지난 3개월 동안 했던 사랑 나눔 캠패인이 지난 주에 마쳤습니다. 모두 22명의 오이코스들이 오셨었습니다. 누군가는 3개월 고생했는데 그 정도냐 할지 모르지만 엄청난 숫자입니다.
모두들 다 좋았다고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진행도, 순서를 맡으신 분들도 다 잘 하셨습니다. 친교부를 담당하시는 이성엽장로님, 그리고 최성봉 목사님, 그리고 주변에서 도와주셨던 많은 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알았습니다. 우리도 된다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저는 전도집회를 별로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른 교회 교인을 빼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일을 하려고 할 때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가 머뭇거리게 됩니다. 제가 그렇다 보니 교인들도 거의 비슷합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2001년 15년 전에 부활절을 앞두고 ‘부활절 큰잔치’라고 해서 3개월 동안 오렌지연합교회에서 비슷한 일을 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워낙 비슷한 일들을 많이 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어려웠습니다. 교인들 주변에 계신 분들이 모두 교회를 다니는 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면 교인들 줄때로 줄어, 힘들어 하던 교우들이 힘을 얻기 원했습니다. 목표인원은 출석인원의 배가 넘는 50명으로 잡았습니다. 당일날 아침에 주보를 만드시던 집사님이 물었습니다. “주보를 30장 정도 인쇄할까요?”
그 말씀은 50명 어림도 없는데 라는 말과 같았습니다. 당시 제 나이, 35살이었습니다. “아니요. 50장 준비해 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그런 의식이 싫었습니다. 하기도 전에 사람 기죽이고, 낙심시키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그날 50명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10명 정도가 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열명 중에 교회에 나오신 분은 놀랍게도 단 한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때부터 그런 일을 하는데 교회가 자신감이 붙었다는 사실입니다. 2001년도 그해 서울대 찬양선교단을 불렀습니다. 30여명이 같이 움직였습니다. 그 일을 그 작은 교회에서 감당했습니다. 그리고 서울대 찬양선교단이 미국의 마지막 공연을 저희 교회에서 드렸던 날, 교회가 미어 터지는 은혜가 있었습니다. 부활절 큰잔치로 교인이 늘지는 않았지만, 그때를 깃점으로 교인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6월에 저에 대한 첫 신임을 물었습니다. 저하고 다른 생각을 가졌던 분들이 그때 나가셨기 때문에 교회는 더욱 훵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젊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부활절 큰잔치는 두 번을 하고 더 이상 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국 사람이 도저히 오지 않을 그곳에 끊임없이 젊은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는 한 달 머무는 학생들까지 그곳으로 들어왔습니다. 2002년도 사진에 아이들을 포함해서 30여명이었던 것이 2004년도에는 50명 정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해보았기에 붙은 자신감입니다.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안된다고 주저앉으면 그대로 멈추어져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멈추어지는 것은 바로 퇴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그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단단해져 갈 것입니다. 그날을 위해 수고하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