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퀸’의 리드싱어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일상을 담은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가 음악영화로서는 처음으로 500만을 넘겼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저의 젊은 날 10대에 늘 들었던 음악이 있었다면 바로 퀸의 노래였습니다. 저의 누나를 짝사랑 하던 교회 형이 여러 가지 좋아할만한 곡을 테이프에 녹음하여(당시에 한국에서는 모든 음악이 그런 식이었습니다) 선물했었습니다. 거기에 들어가 있는 여러 노래 중에 하나였던 보헤미안 랩소디...
영어도 모르던 초등학생이 들었던 그곡은 오페라 같기도 하고 가스펠 같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사실 가사를 알고는 너무 놀랬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사내용 때문에 한국에서는 금지곡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퀸과의 만남은 그의 모든 곡을 좋아하다시피 하게 되었습니다. 금지된 곳을 복사해서 팔았던 소위 말하는 ‘빽판’을 사기 위하여 청계천 뒷골목 레코드 파는 곳을 내집처럼 드나들며 레코드판을 수집했었습니다. 전세계에서 퀸을 대한민국만큼 좋아하는 나라도 없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라디오에서 틀었다하면 나왔던 곡은 ‘Love of my Life'라는 노래였습니다. 모두 프레디 머큐리의 작품이었습니다. 그가 한 여인을 사랑해서 만들었다는 곡입니다.
그리고 1990년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후 모아놓았던 모든 판들을 깨뜨려 버리면서 더 이상 듣지 않았던 노래들...
80년대부터 콘서트가 뜸하더니 프레디 머큐리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91년도에 그는 에이즈에 감염되어 죽었습니다. 예수님을 너무 강하게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저의 10대에 음악적인 영향을 주었던 그가 죽었다는 사실이 슬펐습니다.
지난 추수감사절날 아이들과 영화를 보았습니다. 애니메이션 영화였는데 영화시작하기 20여분이 차이가 나서 집사람에게 나는 보헤미안 랩소디를 잠깐 보고 오겠다고 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영화가 끝나는 10분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10여분에 영화속 장면은 이미 사랑했던 여인과 헤어진 후에 동성애에 빠져든 머큐리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연을 하면서 불렀던 곡이 공연 때 참 많이 나오는 노래 'We are the champion' 공연장을 가득메운 사람들이 합창을 하는 가운데 영화는 끝이 납니다.
10분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우울해 졌습니다. 얼굴이 빠지고 끝까지 노래를 할 수 있을까 싶었던 프레디 머큐리의 마지막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걸어갔던 10대의 모습입니다.
어쩌다 길을 걷는데 젊을 날 들었던 음악이 흘러나오면 걸음을 멈추곤 하셨나요? 아쉬운 건 미국에 오니 그런 추억도 없어졌습니다.
어느 선교사님의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너는 아직 안늙어봤지? 그러나 나는 너처럼 젊었던 적이 있었다”
어느 누가 목사인 제가 동성애에 걸린 리더, 안좋은 가사가 들어있던 퀸의 노래를 좋아했을 것이라 생각할까요? 그러나 저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을 생각해 봅니다. 주름진 얼굴들... 늘 웃으시며 자신의 생각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시는 분들.. 그러나 그분들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잠못 이루는 밤들이 있었고 음악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말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사연들이 있습니다. 어느 한사람 쉬운 사람도,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분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살이 지나갑니다. 벌써 12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