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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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삶의 흔적을 쫓아(부제:뒷조사)2024-02-07 11:28
작성자 Level 10

한창 반일 감정이 고조되어 독립유공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한창 나올 때 였습니다. 불행하게도 저희 가족들은 아버지의 일제 강점기 삶의 흔적을 알 수 없습니다. 아버지가 명치대학을 나오셨다는 사실, 우찌무라 간조의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등만 알 뿐입니다. 일본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가는 8월 15일 광복절 즈음에 독립유공자들의 삶이 재조명되는 것이 한창 텔레비전으로 나올 때였습니다. 형제들에게 “혹시 우리 아버지의 일제 강점기 삶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하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말의 속뜻은 분명히 우리 아버지도 독립을 위해 일하셨을 것이다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말한 것인데,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동생이 “형, 그러다가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반대되는 사실이 나오면 어떻게 하지?” 라고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멍해졌습니다. 

아버지가 공산주의자들를 피해 도망 다니셨던 이야기, 결국 붙잡혀 시베리아로 가는 도중에 하나님께 서원해서 목사가 되셨다는 말씀은 듣지 못한 일제 강점기에 아버지의 삶이 독립운동을 하셨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확대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일제 강점기까지 가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더구나 아버지의 친척들은 모두 이북에 있으니 증언해 줄 분도 없습니다. 

있는 동안 아버지가 섬겼던 교회들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가서 ‘옛날 이 교회 섬겼던 목사아들입니다’ 하면 혹이나 부담이 될까 싶어, 조용히 예배를 드린 후 아버지의 사진을 부탁하는 형식입니다. 가장 먼 곳은 부산입니다(결국 가지 못했습니다) 여동생이 아버지가 6. 25전쟁통에 유치원을 하셨다는 말씀을 기억하고 찾았던 교회의 역사, 창립에 첫 번째로 아버지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버지의 이름 철자가 틀리게 인터넷에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78년전의 첫예배를 기억하신 분들은 우리 아버지의 마지막 철자중 ‘ㅂ’바침이 ‘ㅁ’바침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의 변경은 여동생이 연락하기로 했습니다. 

두 번째가 충남 예산입니다. 교회에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섬기는 부목사님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사진 두 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홈페이지에는 한 장의 사진만 있었는데, 뒤져서 아버지의 오래된 증명사진을 찾아 준 것입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30대의 젊으신 모습입니다. 그 사진에는 저의 모습도 우리 아들의 모습도 보입니다. 받은 사진을 형제들에게 전송하고 같이 감격해 합니다. 

교회들과 연락을 하다보니 느껴지는 생각이 교회의 역사 자료가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것이 예전에 무슨 기록을 제대로 하려고 했을까요? 교회가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마저도 없었을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은 설령 과거의 자료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 있나’하는 자세입니다. 최선을 다해 구해주시는 분과 연락해도 성의 없는 답변이 아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번주에 아버지의 흔적이 담긴, 그러나 참 성의없는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자료를 찾을 예정입니다. 아버지의 흔적찾기... 왜 살아계실 때 하지 못했을까... 아쉽고 죄송한 마음입니다. 주변의 사람에게 잘하는 것, 특히 사랑하는 가족에게 잘해야하는 것은 실제로는 떠나 보낸 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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