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목회를 한지 20년이 되었습니다. 2020년 1월은 저에게 좀 특별하게 다가온 것 같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교우 세분은 1월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학교후배라고 특별한 사랑을 준 김종철 집사님, 반듯한 장기춘 권사님, 그리고 변청자 권사님...
더구나 한주에 두분을, 그것은 하루 상간으로 장기춘 권사님이 지난 목요일에, 그리고 금요일엔 변청자 권사님을...
칼럼에 한분씩 보내신 분들을 기억하면서 썼는데, 이렇게 한번에 써야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모두 보석같았던 분들이고 ... 어릴적 너무 좋아했던 향가가(옛 신라시대의 운율있는 시조) 있었습니다. 제목은 ‘제망매가’
아마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던 것이라 많은 분들이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죽은 누이동생을 기리며 썼던 것인데, 신라 경덕왕때 월명스님이 가까이 지내던 누이가 갑자기 죽게 되자 썼던 글입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아끼던 여동생이 죽었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요? 속세를 벗어난 분이지만, 그의 시에는 어릴적 같이 뛰어놀던 동생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합니다.
최희준의 ‘하숙생’이라는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답게, 그 향가의 어느 부분이 너무 제 마음가운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삶과 죽음의 길이 예 있으며 나는 가노라는 말도 못하고 어이갑니까’ 죽음을 준비한다고 말을 하지만, 이젠 보내도 좋다라고 생각할 만큼의 여유가 있는 이별이 어디 있을까요? 그렇게 같이 지내며 살았던 분들이 그렇게 오래 붙어있고, 그렇게 오래 투병하셨으면 넉넉하게 보낼만도 한데, 떠나 보낸 다음에 정상적인 삶을 찾아가는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지.... 떠나 보내는 것도, 그리고 홀로 남는 것도 다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유족만 그럴까요? 가끔 목사라는 직도 참 잔인한 일을 한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교인을 보내고, 장례를 준비하고, 그리고 또 전혀 다르게 주일 예배를 준비해야 합니다. 어제 교우가 돌아가셨어도, 오늘 설교는 준비해서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잊을 것 같으니까요. 교우를 보내도 살아있는 교우들에게 새로운 하나님 나라 소망을 이야기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납니다. 돌아가신 것을 뒤늦게 알아 장례식도 제대로 치루어 드리지 못한 김종철 집사님...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 그 상한 얼굴에 마음이 속상할 수 밖에 없었던 장기춘 권사님, 저와 둘이서만 데이트하자고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변권사님....
모두 가슴속에 아픔으로 남는 분들입니다. 이제 또 얼마나 많은 분들을 보내야 할지... 제가 은퇴하기 전에 아무도 못 돌아가시도록 하나님께 울고 매달리고.... 땡깡을 부려야 하나요?
예수님이 계셔서 참 다행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먼저 가셔서 “내 아버지 집에 있을 곳이 많다”라고 하시니 말입니다. 아버지 집에서 만날 그날에 부끄럽지 않게 살도록 노력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