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연희동에 있었던 교회의 겨울은 너무 추웠습니다. 그때 발에 동상이 너무 심해서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병원에 갈 형편도 안되던 때에, 기억나는 것은 어느 분이 큰 주사기를 가지고 와서 제 발의 고름을 빼기 시작한 것입니다. 저만 그랬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사셨겠지요. 오남매가 누워있던것은 세번접는 담요라 해서 ‘삼단요’라고 불리웠던 것입니다. 그곳에 오남매가 함께 누워 자랐습니다. 너무 추워서 오줌이 마려도 참고 참았습니다. 이불을 벗어났다 오면 이불속이 차가와 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 작은 삼단요에 어떻게 오남매가 누웠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빨간색 삼단요는 헤어져도 안에 스펀지가 있어서 그런지, 바뀌지 않고 어머니가 기우시며 오랫동안 이삿짐의 한부분을 차지했습니다. 그래도 겨울이 오는 것을 기다렸습니다. 방학이 길었고 교회에 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오락이 없던 시절, 청년들이나 형들은 겨울의 긴긴 날들을 교회에서 보내며 크리스마스 이브를 준비했습니다. 지금처럼 반짝이는 츄리가 아닌, 색종이를 둥그렇게 만들어 서로 엮은 것으로 교회를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톱밥난로였습니다. 추운 집안에 있다가 밤만 되면 교회로 가는 것입니다. 교회와의 거리라고 해보았자 집과 붙어있었기 때문에 소리만 들리면 재빨리 교회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난로가 이미 타고 있습니다. 목사인 아버지가 톱밥좀 아끼라고 아무리 말해도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톱밥은 아주 오래 탔습니다. 교회에 석유난로가 들어오고 성산동에서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성탄절 이브행사에 난로가 과열로 연기가 나며 터졌습니다. 다행히 교인들이 다치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준비한 성극은 올리지 못한채 이브 행사는 멈추어지고 말았습니다. 거기서 어른들과 청년들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생각했습니다. 어른들은 안전을 생각하며 난로를 끄고 끝내려고 하는데, 젊은이들은 난로가 다시 식으면 다시 켜고 다시 행사를 진행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행사를 중단시킨 아버지가 야속했습니다. 그러나 저 또한 교회에 그런 위험한 일이 생기면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부족한 것 같아도 성탄절만 되면 행복했고, 없어도 즐거웠습니다. 그것이 성탄절이 주는 의미가 아닐까요? 김광철 목사님의 사위인 이주동 집사님이 목사님의 회복을 생각하면서 보내주신 비디오 클립은 큰 공연으로 유명한 바이올린 연주자 Andre rieu의 ‘amazing grace’였습니다. 사실 그의 공연은 흥과 즐거움, 감동으로 유명하지요. 그런데, 그 공연에 가장 많은 사람들을 가슴 저미게 하는 것은 역시 우리 자신을 불러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2월의 크리스마스가 따뜻한 이유는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것, 그것만으로도 따뜻하고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