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없던 시절, 예수님을 만나고는 너무 강하게 만나고는 십자가만 생각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탄절 마저도 예수님이 죽으러 오셨다는 것에 마음이 꽂힌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이 되면 더 슬퍼하며 아파했습니다. 죽으러 오신날이 뭐가 좋다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고 찬양할까 하며 힘들어 했습니다. 교회의 시끄러움, 세상의 화려함도 싫어 명동성당에 가서 미사드리는 곳에 앉아있곤 했습니다. 화려한 명동거리를 지나쳐 명동성당으로 들어가 앉아서 나를 위하여 죽으러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슬퍼했습니다. 신앙이 지나친 것입니다. 그 마음이 오랫동안 가서 성탄절 설교를 ‘죽으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파격으로 설교하기도 했었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지나고 나니 크리스마스를 왜 감사하며 선물을 나누며 카드를 보내는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은 기쁜 날입니다. 성탄절이 있었기에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는 역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저처럼 슬퍼하고 아파해야할 ‘성 금요일’을 미국에 오니 ‘Good Friday’라고 부르는 것이 감동이 되었습니다.
2010년도 크리스마스 예배를 12월 21일에 드렸습니다. 그때는 이미 가나안교회와의 통합이 결정되어 크리스마스 예배를 같이 드려도 좋지만 20여년을 섬겼던 교회를 떠나시는 분들을 생각하며 저희끼리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쉬움보다는 새로운 곳으로 가는 설렘이 더 컸었습니다. 성탄절 칸타타를 하고 아이들 재롱잔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14살난 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합 니다. 그러자 주변의 아이들도 울기 시작하고 어른들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습니다. 제 큰아이 였습니다. 4살에 미국에 들어와 섬긴 자그마한 오렌지 연합교회는 그 아이에게 10년동안 행복한 놀이터였고 예배당이었고 사랑이었습니다. 아이의 예수님 추억이 대부분 그곳에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어느 성도가 “예석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잃어버렸을 것이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날의 예배는 특별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도의 성탄절은 눈물과 아쉬움, 그리고 기도로 우리의 가슴속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날 그 눈물로 인해 훗날 저에게 잊지 못한 크리스마스 예배가 언제였냐고 묻는다면 2010년도 예배라고 할 것입니다. 의미! 제가 처음 예수님 만나서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며 아파했던 것도 뒤돌아 보면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0년도에 흘렸던 눈물에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의미없이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더 따뜻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