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잘한다 알려진 곳에서 교우들과 식사를 하였습니다. 그 식당은 아구찜이 유명한 곳입니다. 식사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교우가 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지?” 그랬습니다. 그 맛이 지난 yard sale후 교우들과 먹은 코다리찜에 비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그뿐인가요? 가끔 아침에 교우들이 해주는 음식들.. 금요일 큐티방에서 먹는 음식들은 어느 곳에서도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오신 새가족이 예배 후 새교우실에서 식사하며 “이렇게 맛있는 교회음식 처음 먹어본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괜히 으슥해 집니다. 지난 새가족 환영회때 음식들도 참 대단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음식들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집에서 먹기는 어려우니, 늘 새가족 환영회가 열리도록 목회를 열심히 해야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맛있게 먹는 것은 우리의 몫이지만 무슨 일을 할 때 무엇을 준비할까, 어떻게 만들까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는 것은 잘 보이지 않는 분들의 몫입니다.
교회 주차장 외벽을 둘러싼 나무들을 츄림했습니다. 그 일이 시작된 것도 보이지 않는 분들 때문입니다. 어느날 화요일에 교회를 오니 산더미 같은 나무 자른 흔적이 있습니다, 나이드신 분 두분이 전기톱을 가져다가 잔가지를 하루종일 친 것입니다. 그것 치다가 지쳤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분의 나이가 평균내서 80입니다. 그렇게 많은 나무를 자르려고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그리고 같이 식사를 하는 시간에 건의할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교회 주변에 있는 나무들을 보면 아름답지만 자세히 보면 곧 나무들이 부러져 담장 밖 집들을 치는 날에는 큰 일이 벌어지니 빨리 처리해야 합니다” 아주 심각하신 얼굴로 “목사님이 말씀하시기 어려우시면 제가 장로님께 말할까요?” 하셨습니다. 장로님들께 말씀드리는 것이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나무를 자르면 교인들의 생각이 다 다릅니다. 깨끗하다 부터, 그늘이 없어졌다, 안이 보인다, 걱정거리가 없어졌다. 걱정거리가 늘었다.... 모두들 교회를 사랑하시기에 하시는 말씀들입니다. 사랑하시지만 생각은 다를 수 있습니다. 직접 확인했더니 정말 심각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주차장에 자리 잡고 있던 나무입니다. 이미 안이 썩어서 큰 줄기는 다 죽어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대로 두었다가 가지가 부러지는 날에는 밑에 주차한 차들이 크게 찌그러졌을 것입니다(나무를 자르자, 그 큰가지가 떨어지면서 바로 산산 조각이 났습니다) 장로님들이 머리를 맞대셨습니다. 교우들이, 장로님들이 나무 자르는 분들을 소개했습니다. 9년 전에는 1만불 주고 츄림을 했는데 이번에 정말 싸게 했습니다.
가나안 교회 식구는 누군가의 수고에, 교회의 일에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다들 사랑하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도 교회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은 일한 것에 대한 칭찬입니다.
보기 좋다. 정말 맛있다...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귀에 들리는 격려와 칭찬일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분들의 수고와 보이는 것을 보며 칭찬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어울어지면 교회는 더 아름다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