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을 끊으면 연이 더 높이 날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땅바닥으로 추락 하고 말았습니다.
철조망을 없애면 가축들이 더 자유롭게 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사나운 짐승에게 잡혀 먹혔습니다.
관심을 없애면 다툼이 없을 줄알았습니다.
그러나 다툼없는 남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간섭을 없애면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외로움이 뒤쫓아 왔습니다.
바라는 게 없으면 자족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삶에 활력을 주는 열정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불행을 없애면 행복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행복인지도 깨닫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미국의 척 스윈돌 목사가 말했습니다.
“내 인생의 10%는 나에게 발생한 사건(일)들이고,
90%는 그 사건에 대해 내가 반응한 행동들이다.”
편안을 추구하면 권태가 오고,
나를 불편하게 하던 것들이 실은 내게 필요한 것들이다.
얼마나 오래 살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보람있게 살지는 선택할 수 있다.
얼굴의 모양은 선택할 수 없지만 표정은 조절 할 수 있다.
주어지는 환경은 선택 할 수 없어도 내 마음 자세는 선택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행복도 선택이고 불행도 나의 선택인 것이다.
어느 교우가 카톡으로 보내주신 글입니다. 읽을수록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는 기도도 형식적으로 바뀐다는 사실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급한 일이 발생하면 기도가 달라지고 바라봄이 달라집니다. 나에게 닥쳐진 일을 어떻게 해결하며 선택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그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