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이 체신머리없이 지하철에서 빈자리만 나면 체면 무릅쓰고 비집고 들어와 앉는 것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가서 수술을 하기 일주일전 아내와 잠깐 걸으면 곧 다리가 너무 저려 앉아야 할 자리를 찾게 되었습니다. 지하철에 타면 앉을 자리를 찾아 가야 했고, 아내가 서있고 제가 앉는, 저의 자존심으로는 절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수술 후 회복되었습니다. 지하철을 타면 제가 미리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나이가 드신 분을 보면 재빨리 일어나 그분을 제 자리에 앉히고 기분좋게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보는 눈이 ‘본인도 어린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라는 눈치입니다. 그 느낌도 즐겼습니다. 자꾸 구부리고 걸어다니시는 어른들의 등이 보여 한국에서 오랫동안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 두 번의 전신마취를 했습니다. 한번은 척추수술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소위 오십견으로 굳어진 관절막을 마취상태로 일부러 찢는 수술이었습니다. 첫수술이 끝난 후 병실에 누워있는 상태로 교우들을 위해 기도하는데 머릿속 교우의 얼굴과 이름이 헛나올 뿐만 아니라 이름이 기억나는데 시간이 걸려 무척 당황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것이라 생각했는데, 오랜시간이 걸렸습니다. 두 번째 마취를 할때는 기억력이 더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아와 나이드신 교우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드디어 목사님이 우리와 비슷해 졌군요’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예전에 드라마에서 셋째아이의 이름을 부를 때 한번에 부르는 것이 아니고 세 번째가 돼서야 겨우 제대로 맞추는 것을 보고 ,,, 되게 머리가 나쁘신가 했더니 그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기억나지 않음이 저주가 아닌 축복인 것도 깨닫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시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잤습니다. 거기다가 갑자기 일어나는 권태는 잠을 자다가도 일어나면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였습니다. 두달여간의 기간을 보내고 와서 다시 시차적응 때문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면제가 듣는 것 같더니, 둘째날부터 수면제를 먹어도 졸음이 쏟아지는 것은 새벽 2, 3시가 넘어서입니다. 그러다 보니 새벽예배에 부담으로 잠을 안자고 그냥 교회에 나가게 됩니다. 잠을 못이룬다는 것... 이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잠이 안 와 혼났다. 커피마시고 꼬박 밤을 지새웠다.... 지금까지 평소에 수면시간이 4시간에서 5시간 정도였기 때문에 밤에는 피곤해서 잤고, 아무리 밤에 커피를 마셔도 잠을 잤습니다. 잠이 부족했지 잠을 못이루지는 않았었습니다. 더 자고싶다는 욕심이 있었지, 잠좀 잤으면 하는 바램은 없었습니다. 밤에 잠못이루는 분들의 고충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저에게 이러 저러한 고충을 말씀하시면 온몸으로 이해할 것 같습니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경험하여야 얻는 공감들....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을 더 이해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 하나 더 얻었습니다. 전신마취중에 얻은 변비... 와우 변비로 고생하는 분들이 얼마나 힘들까 ... 이래 저래 공감지수가 높아졌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