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올라가 처음으로 만났던 교육 전도사님은 찬양 잘하시고 열정적으로 학생회를 이끄셔서 기억에 남는 분입니다. 산 기도를 좋아하셔서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철야기도를 쫓아다녔습니다. 그때는 교회들이 참 많이들 그랬습니다. 그래서 전도사님이 이끄시는 학생부는 정말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저는 거기서 밖으로 도는 은혜받지 못한 목사의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고신대학교를 나오셨는데, 고려 신학교의 교훈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코람데오입니다. 그래서 코람데오라는 그 좋은 말씀을 중학교 1학년때 마음에 새기게 되었습니다.
키타도 잘치시고 찬양을 워낙 좋아하셔서 학생들을 데리고, YMCA 건물에서 시작된 예수전도단 화요찬양을 데리고 다니셨고, 그때 불렀던 가스펠들을 교회에 소개하였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작은 불꽃 하나가’
전도사님은 학생부의 음악 수준, 기도수준을 엄청나게 높여 놓으시고 교회를 떠나셨습니다. 전도사님이 떠나실 때 저의 모습은 여전히 주님 못 만나 갈등하고 있는 사춘기 소년이었습니다.
전도사님께 사랑받는 학생은 못 되었지만 그분의 삶은 존경했었습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습니다.
갑자기 그분의 삶이 다시 저의 추억속으로 들어왔습니다. 페이스 북에서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습니다.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하고 뉴욕에서 공부하는, 정확히는 서울대 찬양 선교단으로 교회를 몇 번 왔던 청년이 올린 가족사진에 왠지 낯익은 분의 얼굴.... 40년이 지났지만 바로 알아볼 수 있었던 목사님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결혼사진에 주례목사님으로 계셨던 돌아가신 장달윤 목사님의 모습....
전도사님이 제가 목사가 되었으리라 상상이나 하셨을까요?
온라인 예배가 유투브로 올라갑니다. 저희 교회 유투브를 열면 그 밑에 기독교방송국에서 하는 ‘새롭게 하소서’ 영상이 뜹니다. 거기에 98년도에 정말 수도 없이 말썽을 부렸던 청년이 멋진 성악가가 되어 간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워낙 놀기를 좋아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던 놈이라 힘들어 했었는데, 22년이 지난 후 유럽에서 가장 잘나가는 성악가가 되어 간증하는 내용을 듣게 됩니다. 간증이 얼마나 은혜롭게 실제적인지...
‘그 친구를 하나님이 이렇게 쓰시는구나...’
시간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어 놓으실지 우리는 모릅니다. 훗날 달라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참 멋진 일입니다.
40년 전의 만남, 20년 전의 만남...
이제 다시 만나기도 쉽지 않은 환경 속에 있지만, 어느새 저는 14살 소년이 되어, 31살 전도사가 그때를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을 빨리 흘러가고 우리는 다 바뀌어 갑니다. 점점 더 좋은 사람으로 바뀌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