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칼럼을 금요일 밤이나 토요일에 썼습니다. 그런데,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화요일 저녁까지는 써서 주보를 발송하여야 하다 보니 참 애매합니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날인데 그것에 대한 글도……. 연응준 전도사님 마지막 날인데 그런 소리도 한줄 쓰지 못하고 다른 글을 써서 보내고 말았습니다. 지난 어머니날에 있었던 예배를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연응준 전도사님 마지막 예배였기에 교역자들은 모두 출동하였습니다. 마지막 설교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연전도사님과 각별했던 해나 자매는 김성봉 집사와 함께 첼로로 ‘축복하노라’를 연주했습니다. 그리고 연전도사님은 참 마음에 남을 만한 은혜로운 설교를 하셨습니다.
가족에 대한 설교였는데 그 설교는 본인이 10대, 20대를 보내며 고민했던 부분들 이었습니다. 설교를 들으며 연전도사님은 학생을 가르치면 참 좋은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배후 교역자들끼리 세 가지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 번째 행사는 졸업식이었습니다. 올해 에스타, 연응준 전도사가 졸업을 하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졸업식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을 교회에서 준비했습니다.
미국 대학졸업식에 늘 연주되는 곡이 있습니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죠. EM의 한즈가 기타를 그리고 해나와 온유가 첼로로 행진곡을 킬 때, 두 사람이 입장했고, 제시카 전도사님이 마치 졸업자를 소개하듯이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하고 졸업장이 전달되었습니다. 참 행복했습니다. 뜻밖의 일에 두 사람도 당황해 하고 행복해 하고…….
두 번째는 에스타 전도사의 생일파티도 열렸습니다. 미리 한 주전에 각 교역자들이 생일 메시지를 비디오로 촬영하여 제시카 전도사에게 보냈고 그것을 또다시 편집하여 영상메세지가 나갔습니다. 준비한 케이크를 먹으며 교역자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에 모두들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연응준 전도사의 송별식이 거행되었습니다. 6년을 가나안교회에서 보냈습니다. 유학생으로 와서 집사가 되고 전도사가 되었습니다. 늘 고민이 많았던 청년이었습니다. 본인이 20대에 고민했던 것을 다른 사람들도 고민할 것이라 생각하고 그들을 돕고 싶어 했습니다. 홀로 왔었는데 어느새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냥 쓸쓸하게 보내는 줄 알았는데 많은 분들이 격려해 주시고 연락해 주셔서 연전도사 가족이 더 감사했습니다. 아쉬운 것이 있었다면 사모님이 아이들과 교회에 오지 않고 비디오로 인사한 것이었습니다.
외롭게 보내면 어쩌나 싶었는데 늦게까지 멀리서 와서 손 흔들며 인사하고 가는 분들로 교우들의 마음이 전달되는 것 같아 참 행복했습니다. 마침 교역자들을 위해 헌금해 주신 것이 있어서 교우에게 감사하며 행복해 할 수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교회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요즘 보통 1시면 교회에 사람이 없는데, 그날은 3시가 되도록 갈 수가 없었습니다.
좋은 교우들, 좋은 교역자들과 목회를 한다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이 있을까요? 참 좋은 분들과 목회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사람들과 마음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요? 아무도 없는 듯한 예배당이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채워져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