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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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도하지 않은 길을 가야 할 때2024-02-07 11:36
작성자 Level 10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겠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원서를 넣을 때 1지망과 2지망은 원하는 전공을 썼는데, 3지망은 그냥 빈공간이라 쓴 것인데, 3지망에 걸린 것입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이라 전공에 흥미를 잃고 지냈습니다.

뜻하지 않게 가게 된 군대... 내가 가는 부대는 철책선의 육군이 아닌 하필 모든 젊은이들이 원치 않는 전투경찰이었습니다. 군대가는 것도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투경찰이라니... 

영화로 나온 1987년도... 

1987년 6월에 소위 말하는 닭장차(창살로 만들어져 있는 전투경찰 버스)를 지키고 있다가 버스에 불이 붙고 도망가는 와중에 다리를 다친 관계로 2주간 경찰병원에 입원을 해야만 했습니다. 내 인생이 참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1987년 6월 연세대에서 나와 나이가 같은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죽고 말았습니다. 

다리를 다쳐 병원에 입원하는 바람에 전투경찰로서 마땅히 있어야 할 그 현장을 비껴나갈 수 있었습니다. 

다리를 다치고 몇 번의 사고(?)를 친 저는 88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급조해서 만든 올림픽 경비대에 전출되고 맙니다. 이제 졸병을 벗어났나 싶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누가 일 잘하고 말 잘 듣는 군인을 다른 부대로 보내겠습니까? 다리 다치고 고참에게 대들기 일수였던 저는 그냥 골칫거리인 병사였던 것입니다. 올림픽 경비대에는 저처럼 자대에서 사고치고, 병들어 보낸 사람들과 경찰관들이 혼재되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워낙 사고를 친 사람들이 많다보니 그나마(?) 상태가 나아보이는 제가 행정병이 되었습니다. 대략 50여명이 넘는 행정병이 모여 있는 대대행정에는 서울대 법대를 비롯해서 내놓라 하는 똑똑한 사람들과, 상고를 나와 타자와 부기에 능한 사람들이 넘쳤는데, 나는 그냥 쓸모가 없어 보내진 사람과 같았습니다. 매일 복사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매일 남들이 사무실로 나오기 전에 나와 청소하고 타자를 연습해서, 어느날 많은 지휘관들이 볼 때, 가장 타자를 잘 친다는 고참을 물리치고 일등 타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행정실력을 인정받아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들어가는 5명의 행정병에 뽑혀 일 년 내내 1천 8백여 명의 교육을 담당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거기서 행정, 기획, 사람 대하는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경찰관 교육담당이었기에 책들도 원 없이 읽었던 순간이었습니다. 다리를 다치면서부터 대략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경찰병원에 입원해 있던 제가 3개월 후 주경기장에서 먹고 자는 5명중에 한사람이 된 것입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고, 늘 원치 않는 일들이었는데 그리고 가게 된 것입니다. 

인생을 뒤돌아 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는 길에 꼭 불행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코로나 사태로 교회 시스템이 더 좋아졌습니다. 영상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자연이 숨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의도하지 않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길을 한숨 쉬며 갈지 기대하며 갈지는 선택인 것 같습니다. 어짜피 가는 길이라면 기대하며 가고 싶습니다. 

“나의 길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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