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사회적인 활동이 멈춘지 두 달째 되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죽어가는 분들, 그리고 확진자의 소식이 올라오더니 그것도 일상이 되어버리자 더 이상 그것에 주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집에 머무는 순간들이 많아지면서 수많은 이야기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재미있는 영상들도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곧이어 사람을 감동시키는 영상들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재미있는 영상들도 올라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고 감동주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어느 성도님의 꿈이 ‘사람에게 감동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런 어려운 때에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힘이 아니고 나눔이라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 만나고 나서 했던 것이 행려병자들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 단체가 병원을 세운다해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때 점심때 주변의 노숙자들을 위해 밥과 국을 주면서 불렀던 찬양이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라는 찬양이었습니다. 당시는 그렇게 행려병자들을 돕는 분들이 거의 없을때라 기독교인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참 아름답게 소개되었었습니다. 교회가 사회를 힘으로 끌고가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아마 중세시대가 아닐까요? 황제가 되려면 교회에 가서, 엄밀하게는 교황에게 가서 허락을 받아야 할 때였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그 시대를 역사는 암흑시대라고 말합니다. 만약에 교회가 잘했다면 그런 이야기를 듣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수도원 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수많은 분들이 교회가 아닌 수도원에 들어가 묵상하며 주님과 보냈습니다. 좋은 수도사들이 나온 것은 분명하지만 그들이 사회에 감동을 준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진만 보며 기도하다가 어느 순간 멀리서나마 보자하고 방문하면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따뜻한 말씀, 위로가 사람을 감동케 합니다. 어느 분이 도네이션한 것으로 따뜻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저희 전도사님들에게까지 신경을 써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저희 교우가 아닌데, 여러 개의 박스를 만들어 나누어 주셨으면 좋겠다 하셔서 여기저기 나누어 드렸습니다. 그 박스를 받으러 가는 순간 참 감사했습니다. 집에 딸아이와 아내를 위해 마스크를 가져다준 사랑 때문에 한참을 울어야 했습니다. 어느 교우가 마스크 1,250개를 긍휼사역에 도네이션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마스크이지만 화요 긍휼사역에 물건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을 보면 정말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건을 받으러 뜨거운 날씨에 몇시간을 줄로 서있는 분들... 그분들에게 마스크를 준다고 생각하니 그것을 받던 저녁에 행복해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느 분이 교회를 거쳐간 교역자들에게 보내달라고 헌금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따뜻함이 베어나오는 일들... 행복했습니다. 사랑이 필요 없는 시대가 있을까요? 없을 것입니다. 다들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때 흘러가는 사랑이 사람을 감동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교회의 힘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