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알고 지냈지만 집사람은 제가 예수님 만나기 전의 삶을 너무 잘알고 있습니다. 교회오빠였던 저를 집사람은 늘 바라보며 기다리는 입장이었습니다. 사회엔 불만이 많았고, 미래에 대한 어떤 특별한 계획이 없었습니다. 당시는 대학생이 그렇게 많지 않을때라 졸업하면 대부분은 그냥 취없이 되던 때라, 학점관리 이런 것들이 익숙하지 않았던 행운의 시대이기도 했습니다.
학교는 데모하지 않으면 술마시는 문화였습니다. 그 문화는 무엇인가 불만투성이인 저에게 참 맞는 것 같았습니다. 술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같이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이 옆에 있었습니다. 저랑 같이 술드시는 것을 좋아하는 교수님까지 계셔서 일주일에 삼일 정도는 폭음을 하며 20대를 보냈습니다. 공허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그런 자리들이 내 자신을 채우는 듯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상하게 돈 버는 은혜를 주셔서 그렇게 살아도 될 만큼 은혜를 주셨습니다(10대부터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본 적이 없기에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아닐까 생각되어 집니다).
인생의 어리석음은 돌아온 길을 되돌리고 싶은 것이지요. 제가 목사된 후에 만난 친구가 “인철이 너 술만 안마셨어도 집을 샀을 꺼야”라고 하는데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훌쩍 차를 몰고 떠나서 어느 한곳에 숨어서 지내다 왔던, 모르는 동네 사람들과 친구되어 몇날 며칠을 지내다 왔던 그때가 생각나곤 합니다. 목사가 된 후에는 숨을 곳이 없다라는 사실이, 그래도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 힘들때가 있습니다.
집사람과 교회를 가는 길에 “내가 목사가 안되었으면 뭐하고 있을까?” 라고 물으니 일초도 고민하지 않고 “아마 간암으로 죽지 않았을까?”
연애하면서도 술을 마시면 끝까지 가는 저를 옆에서 본 아내의 생각일 것입니다.
며칠 전 막내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이러저런 이야기 하는 중간에 “형, 난 형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해”
저는 무슨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나 싶었는데, 동생의 이야기는 “난 형을 돌아온 탕자라고 이야기 해. 형이 목사가 된 것이 참 좋아” 초등학생인 동생이 보았던 저의 모습은 사회가 달라져야 한다고 데모하러 돌아다니고 늘 술이 취해 돌아온 모습만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89년도 제가 군에서 제대후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학교 복학 안하고 일년동안 하고 싶은 것 하겠다고 각지를 돌아다니던 책임감 없는 형의 모습을 보면서 89년도에 누나가 있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동생에게 비친 저의 모습은 ‘탕자’였습니다.
그랬던 형! 막내 동생이기에 저와 이야기를 할 기회도 없었던 동생, 그 동생이 홀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아르바이트 하고 노력하면서 미국에서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 동안 동생은 더 하나님께 매달리고 더 굳건한 신앙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돌아온 탕자!’
동생과 전화를 끊고, 마지막 순간까지 돌아온, 되돌아가지 않는 신앙인의 삶을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