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
우리는 보통 거인하면 키가 큰 사람을 의미합니다. 성경속에서는 ‘골리앗’이 대표적인 거인이지요. 거인이 갖는 의미는 큰 일을 할 만하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진짜 거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작은 분들이 많았습니다.
돌아가신 이철현 장로님은 작은 거인이셨습니다.
젊으셨을 땐 본인이 표준키셨다고 우기기도 하셨지만, 장로님은 아마 젊으셨을때도 큰 키가 아니신 것은 분명합니다. 작았기 때문에 더 빠르셨고 누구에게 맞고 다니시지는 않았다 하시는 것이 농담 같지는 않으셨습니다. 집안이 독립유공자 집안이고 형제간의 우대도, 결혼생활도 참 원만 하셨습니다.
장로님을 처음 뵈었던 것은 교회 지붕위였습니다. 교회가 합쳐지기 전에 방문했을 때 장로님은 지붕위에서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지붕위를 쳐다 보며 말씀을 나눌 때 장로님이 그렇게 키가 커보이실 수 없었습니다. 참 큰 분이 올라가 일하신다 생각했습니다. 장로님의 키는 일하시다가 넘어지시면서 한쪽 어깨를 다치시면서 한쪽 어깨가 쳐지시면서 더 작아 보이셨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각하시는 품과 넓음은 어느 키 큰 거인보다 더 크시고 넓었습니다.
PCUSA를 잘 모르는 저에게 교단에 대한 설명과 과거 교회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말씀해 주신 분도 장로님 이셨습니다. 편을 가르기 보다는 늘 화목하게 하는 편에 서시려고 애쓰셨던 장로님...
개인적인 감사는 한국에 나가셔서 뵈었을 때 입니다. 저희 부모님과 사진을 찍어 보내주셔서 그리운 부모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고 사실때의 거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제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속초에 계셨는데, 잠실역이 그렇게 넓은지 모르고 약속을 했다가 길이 엇갈려 뵙는데 정말 고생을 했습니다. 더운 여름날 목사를 못 만나 이리저리 뛰셨는지 와이셔츠는 땀으로 온통 다 젖어 있으셨음에도 환하게 웃으며 반기셔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속초에서 오셔서 잠깐 밥 한 끼 같이 먹고 다시 올라 가신다고 하니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그때 손에 꼭 쥐고 있으셨던 동해 마른 오징어...
다시 돌아서서 가시는 작은 뒷모습에 받은 마른 오징어 붙들고 한참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사랑해 주셨습니다. 넉넉함이라는 것이 소유에 있지 않음을, 거인의 참된 의미가 키가 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장로님을 비롯한 교회 어른들 보면서 배우게 됩니다. 첫 번째 중풍을 맞으시면서 일을 내려 놓으셨습니다. 더 이상 지붕을 올라가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병원에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찬양에 울며 웃으며 즐거워 하셨던 일을 잊지 못하겠습니다, 어렵다 하는데도 일어나셨고 두 번째 중풍을 맞은 다음에도 일어서셔 거인이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세 번째 중풍을 맞고 힘들어 하실 때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작은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너에게 아주 큰 상을 내리리라” 하늘에서 주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