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도 익숙해 지면 더는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돕다 상처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10을 주다가 8을 주면 내 것 2개는 어디에 있느냐고 말하는 예도 있다고 합니다.
3개월여 들어오던 구제 상자가 한 달여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만들어 내보는 곳의 리스트에 우리 교회가 빠진 것입니다. 그것이 안 들어오는 동안 정말 여러분들이 고생했습니다. 사실 코로나 이전에 늘 하던 방식입니다. 물건이 들어오면 상자에 나누어 만드는 것인데, 문제는 만드는 양입니다. 예전에는 120개 만들면 되었는데 이젠 그것의 세 배 이상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상자로 들어올 때는 그 상자만 주어도 훌륭했을 뿐만 아니라 손도 많이 가지 않았습니다. 힘든 것은 다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는 분들에게 제대로 된 물건을 못 주면 모두 힘들어합니다.
이동렬 집사님, 그리고 애나 사모님이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저희가 긍휼 사역을 위해 만든 비디오를 보여주었더니 그분들도 감동했다고 합니다. 곧 좋은 소식이 들릴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다시 물건이 들어오기로 결정되었다는 문자를 월요일 저녁에 받았습니다. “야호” 소리를 지를 정도로 기쁜 일입니다.
아침 7시 30분에 트럭이 교회로 들어옵니다.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전보다 절반만 교회에 주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사실 엄청나게 많은 양입니다. 무려 1천 상자니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하나님께 감사. 주님께 영광” 뭐 이런 마음이 넘쳤을 텐데…. 말입니다.
내 안에 2천 상자가 들어올 때의 마음으로 감사가 고정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뒤돌아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감사 거리를 찾게 되자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처리하기가 곤란해 여기저기 막 나누어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규모 있게 나누게 되었습니다. 많을 땐 몰랐는데 부족할 때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문제들이 발생했었습니다. 어떻게 나눌 것인가, 누구에게 더 많이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이게 계속해서 불편한 문제가 되었었습니다. 나눔이 있는 곳에서 불편함이 발생하면 참 어려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참 적당하게 주셔서 규모 있게 나누는 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청량리 굴다리에서 시작된 어느 공동체에서 일을 시작할 때 불렀던 찬양 ‘사랑의 나눔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시도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계신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감사가 빠지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주변에 어려운 분들에게 상자가 흘러갈 수 있도록 애쓰고 노력하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