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칼럼을 쓴 것이 벌써 18년이 넘었습니다. 매주 한편의 칼럼을 써가는 것이 소재가 많으면 쉽지만 어쩔때는 고통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주는 노회도 있고 한국방문도 있는데, 노회 이야기는 다음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셔서 한국에 급하게 가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은 오래 기도한 것처럼 은혜롭게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시는 날, 갑자기 고통이 있으셔서 집사람이 전화를 드려 병원에 가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때만 해도 정신도 멀쩡하셨습니다. 그 시간이 토요일 오후 2시,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시는 엠브란스에서부터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병원에 들어가신지 3시간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장인어른이 가장 이뻐했던 손주가 예석입니다. 한국에서 군복무할 때 토요일마다 가서 면회를 하셨습니다. 예석이에게 전화를 해서 할아버지 돌아가실 것 같다고 알렸더니, 예석이가 할아버지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예석이가 하는 사랑의 소리를 들으시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장례식장은 일산의 병원이었습니다. 요즘은 상복도 빌려줍니다. 여자분들은 하얀색 소복이 아닌 개량식 검은색 소복입니다. 남자들에게도 삼베옷이 아닌 검은색 양복을 빌려줍니다. 어느 순간부터 장례식에 하얀색이 사라지고 서양식 검은색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5일장, 7일장이 사라져서 요즘은 삼일장을 합니다. 많이 간단해 졌다고 하지만 미국에서 하루 예배드리고 마치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예배가 많았습니다.
장례식이 마치고 난 후에 아내는 장모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처가에서 잠을 잤고 저는 두집을 오가며 잠을 잤습니다. 나이드신 어머니도 제가 집에 있기를 소원하는 모습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낮에는 두집 살림 챙기다가 나중에는 각기 어머니가 계시는 곳에서 잠을 잤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있는 것이 너무 좋으신지, 자꾸 이것저것을 꺼냅니다. 한국에 가면 다큰 아들에게 쓰라고 주시는 돈... 용돈만 생기시면 은행에 가서 달러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을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어머니의 마음이라 받았다가 동생에게 생활비로 쓰라고 주어야 합니다. 늘 가면 연례행사 중에 하나가 아버지가 입으셨던 양복을 고치셔서 주시는 것입니다. 유난히 추웠던 한국! 미국도 그렇게 추우신줄 알고 두꺼운 양복 두벌을 주십니다. 미국에 가면 입지 않을 양복일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안가지고 가겠다고 말씀을 드릴까 하다가 엄마의 얼굴을 보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정말 힘들었던 것은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셨던 아버지의 하얀 양복을 꺼내놓으신 겁니다. 깔끔하게 보관되었지만 이미 35년도 더된 양복... 아주 간곡한 말로 “어머니 요즘 흰양복 입으면 가짜 목사처럼 보입니다” 유난히 아버지가 하얀 양복을 입으면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얼굴에 섭섭함이 베어 나옵니다. 그러나 정말 하얀 양복은 자신 없었습니다. 가방을 하나 만들어 어머니가 주신 아버지의 옷을 한 가방 가득 넣어 옵니다. 준비해 놓으셨다가 아들이 안가지고 가겠다는 흰 양복이 현관에 덩그러니 올라가 있습니다. 버리시지는 못할 것 같고, 다른 분에게 주실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에 와서 살짝 후회를 합니다. 그것도 가지고 간다고 했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다른 사람에게 주지 않았다면 다음번에는 가지고 와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