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하면 무엇을 할것인가 하는 질문을 받습니다. 은퇴후의 일은 원칙은 첫째, 섬겼던 교회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 둘째 재정은 내가 준비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은퇴후 목회를 하진 않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은퇴를 꿈꾸었습니다.
머릿속에 그려보았던 것은 핸디맨 기술을 배우는 것입니다. 기술을 배우면 선교라 할것없이, 트럭 하나사서 멕시코에 무너진 교회들 찾아가(멕시코에서 보았던 교회들은 예전 아버지 목회를 떠올리게 합니다) 아마츄어지만 현지 교인들과 더불어 교회를 고치는 일을 해보겠다 생각했었습니다. 이 일은 굳이 누구의 도움을 받을 필요도 없이, 자식들이 후원하면 되는 일입니다. 다만 큰 작업은 힘들겠다 생각하게 된 것이 허리수술을 하고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한다 생각하면서 많이 약해졌습니다. 준비과정으로 2019년 교회에 오셔서 설교하신 김성환 목사님의 목공교실에 등록했었는데, 등록 학생이 부족해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목회자 가정 돕기입니다.
12년전 결혼주례를 해준 젊은 목회자가 어느 교회 담임으로 나가게 돼서, 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 좋은 교회에 담임이 되었지만 목사님 사모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늘 안스럽습니다. 그곳에서 몇몇 후배 목사님들을 뵈면서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이들 때문에 치이는 사모님들을 뵈면 예전 생각이 납니다.
새벽 4시에 교회로 가면 그때부터 오후까지 집에 안들어 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집사람이 한사람만 도와줬어도 아이들 학교길이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는 말을 아이들이 다 커서 했습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안스러움이 저보다 젊은 목회자들의 삶에 보이기 시작합니다. 단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주일, 사모의 삶, 그리고 가족들.... 그렇다고 교회의 형편이 마음대로 쉴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뒤를 돌아 봅니다. 목회에 있어서 설교를 안했던 적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못하는 설교이지만 한국에서도 한주에 5편 이상씩을 했었는데, 미국오기 전까지 세달을 쉰 것이 가장 길었고, 그리고 허리수술 하기 위해서 두달(그때도 한국에서 몇몇 교회 설교를 하긴 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걸려서 쉰 두주....
설교를 쉰다는 것이 무엇일까 싶지만, 쉴때마다 묵상이 깊어진 것은 사실입니다. 특히 팬데믹에 쉬었던 두주... 집사람과 둘이 예배당에 와서 교인들 없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편하게 묵상하며 보냈던 시간이 있었기에 그 기간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 조성우 목사님이 오셔서 주일 설교를 제가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이 우스게로 “로또 맞았네?” “누가?” 그랬더니 집사람이 “내가”합니다. 그랬습니다. 집사람은 금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저에게 무엇인가 부탁이나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의 삶입니다.
작은 교회는 어떨까요? 작은 교회 목사님은 아마 그 한번의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은퇴하면 어려운 후배들 찾아가 제발 설교좀 한번만 시켜 달라고 조를 것입니다. “은퇴후 불러주는 데가 없어 설교하고 싶어도 못해 죽겠으니 선배 한사람 살리는 샘치고 공짜로 제발 불러라 내가 도리어 헌금하고 설교할게”라고 이야기 하면 불쌍한 선배 좀 이해해 줍시다하며 교회에다 이야기 하기도 좋을 것입니다. 예배를 마치면 후배 목사님 가족을 데리고 근사한 데에 가서 식사를 할 것입니다. 제가 같이 가느냐구요? 아니요. 저는 집사람과 아이들을 볼 것입니다. 보통 사모님들은 어린 아이들 데리고 밥 먹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아이들 챙길래 아무것도 못합니다. 집사람과 저는 아이들 데리고 놀이동산에 가서 놀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선물도 사주고, 목사님 내외는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도록 온갖 폼을 다 잡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밤에 집에 내려다 주고는 집사람과 저는 바람같이 그곳을 떠날 것입니다.
아 상상만 해도 즐겁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잘 되려면 아무 탈없이 은퇴해야 합니다. 은퇴할때의 모습이 그래도 아름다워야 그 날이 오지 않을까요?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면 올 일들입니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