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3주간 휴가를 얻었었습니다.
2년동안 일하고 난 후에 얻은 휴가인지라, 친한 친구들과 여행도 다녀오고, 마지막주 금요일은 애엄마와 함께 1박 2일로 둘이서만 여행을 떠나기로 계획되어져 있었습니다. 참 의미있는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그냥 토요일 오후를 함께 보내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조성우 목사님이 주일날 설교하시기 때문에 저도 오랜만에 토요일에 여유가 생겨 함께 그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조성우 목사님께 감사)
딸아이가 좋아하는 곳은 바닷가인지라 가까운 롱비치 항구에서 점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함께 나누는 중에 딸아이와 있었던 추억을 이야기 했는데, 사실 저에게 있는 기억은 대부분 아이가 아주 어렸을 적, 한국에 있었던 것들입니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것은 아이 손목에 있는 흉터입니다. 미국 오기 전 마지막으로 참석한 선교대회에서 두 살 난 딸 아이가 저에게 주겠다고 박카스를 들고 뛰다가 넘어지면서 손에 있던 박카스 병이 깨져 손목을 찢은 것입니다. 아이 주변으로 순식간에 청년들이 모이고 피가 너무 나니까 혹이나 큰 핏줄을 건딘 것이 아닌가 걱정되는데 제가 선교대회 전체를 진행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함께 병원에 갈 수 없었습니다. 걱정하는 스텝들에게 별것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선교대회를 진행했지만 너무 걱정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몇 바늘 꼬매고 나왔습니다. 지금도 조그마한 예림이가 손에 박카스를 들고 저에게 달려오다가 넘어졌던 장면이 생생합니다. 집사람의 추억도 비슷합니다. 딸 아이는 어릴 때 늘 젖병을 물어서 그런지 치아가 대부분 썩어있었습니다. 미국으로 들어가기 전 치아는 모두 고치고 가야 한다고 해서, 가르쳤던 연세대 치대생들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아직 의사도 아닌 실습하는 학생들에게 부탁한 것입니다. 딸아이는 입을 고정한 상태로 두시간 동안 소리 내지 못하고 울면서 그 치료를 마쳤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독하게 참던지, 치료하던 학생들도 놀래고, 저는 보지 못했던 그 장면을 집사람이 이야기 하는데 “우리딸 참 대견해”라고 격려했습니다.
자라면서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는지, 섭섭한 것은 없었는지 물었는데, 그런 것 없이 자랐다고 대견스럽게 말해 줍니다. 왜 없었겠습니까? 이렇게 시간을 보낸 것이 도대체 언제인가 싶은데 말입니다. 딸 아이와 같이 바닷가를 거닐고 보바차도 마시며 토요일 오후를 함께 보냈습니다. 참 좋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어쩌면 손주들과 함께 거닐지 않을까요?
그날 식사값은 딸 아이가 냈습니다. 훗날 아이와 함께 할 이야기가 하나 더 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