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찬란한 고난이었다’라는 책을 쓰신 최금옥 권사님으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호상입니다. 이유는 102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죽음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서 돌아가셔도 그리운 것이지만, 102세를 보내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처럼 복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축하해 드리고도 남을 죽음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돌아가시기 불과 며칠에야 몸의 거동이 어려워지기 시작하셨고 자녀손들이 다 와서 인사를 하고, 그리고 그 자녀들 보는 데에서 임종하셨는데, 병원 관계자들까지 그 죽음이 너무 복되고 아름다워, 이런 죽음을 본적이 없다 말할정도이니 가족들에게는 그런 호상이 없습니다.
일주일 전에 연락을 받았고, 사실 제가 전혀 뵙지 못했던 분이시고, 자녀들이 일곱인지라, 아마 각기 섬기는 교회에서들 오실 것이기에, 장례예배에 참석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가는 것이 소위말하는 오버아닌가 싶었는데, 권사님이 보내신 글을 계속읽다가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내주신 글을 읽는데, 한 구절이 저를 너무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강정례 권사)에게 돌아가시기 전 13년 동안 권사님은 어머니의 아픈 손가락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랬습니다. 88세가 되셨을 때 사랑하는 딸의 사위가 사고로 큰 사고가 났다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도하셨겠습니까? 북한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준비하던 사위이니 기적을 보여달라고 수도없이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사위는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반응도 못하고 누워있는 사위옆에서 하루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딸의 삶을 보시는 어머니는 날마다 사위의 부활을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사위가 돌아간지 1년이 지난 후, 당신의 하실 일을 이젠 다 마치신 듯 돌아가셨습니다.
아픈 손가락...
최금옥 권사님의 두 딸은 모두 미국을 빛낼 만한 자리에서 일하고 있고, 권사님도 기도하시며 씩씩하게 살아가고 계시는데, 어머니에겐 그 딸이 아픈 손가락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최금옥 권사님이 어머니를 뵐때마다 느끼시는 감정이었지 않을까요?
100세가 넘으셔도 엄마는 엄마셨던 것입니다. 본인의 몸이 약해져도, 늘 자녀들을 걱정하셨던 엄마였던 것입니다.
한국에 계신 어머니가 90입니다. 우리 엄마도 늘 그럴 것입니다. 자식이 50이 넘어 60이 되어가도 엄마에게는 늘 걱정되어지는 아이입니다. 엄마는 나이가 드셔도 엄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