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학생들을 일으켜 세워 책을 읽으라고 하셨는데, 가장 좋은 선생님은 ‘책 읽을 사람?’ 물어보시는 분이셨고, 이름을 부르시거나, 번호를 불러 책을 읽게 만드시는 분은 나쁜 선생님이셨습니다. 책을 읽으라고 할까 늘 두려움이었습니다.
3학년 때 선생님의 이름은 마영희 선생님이셨습니다. 다녔던 연희 초등학교는 잘사는 사람들과 못사는 사람들이 극명하게 구분되던 학교였습니다. 아버지가 목회하시던 교회는 모래내 개천이 흐르는 작은 산중턱에 있었는데, 그곳에는 피난온 실향민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그리고 산을 넘으면 70년대 초인종 놀이가 가능한 집들이 즐비하였습니다. 늘 저의 친구들은 산동네 실향민들이었고, 그 아이들이 편했습니다. 노는 방식도 공부도 늘 차이가 났는데, 마영희 선생님은 그렇게 조화롭지 못한 아이들을 짝으로 만드셨습니다.
당시는 문교부에서 가끔 장학사들이 방문하셨는데, 장학사들이 들어와 수업을 참관하실 때가 많아 준비도 미리 해야 하는데, 마침 오실지도 모르는 그 날을 위해, 우리반은 연극을 준비했었습니다.
연극같은 것을 하면 당연히 공부 잘하는 아이들, 괜찮게 사는 아이들이 하는 것이라 가난한 아이들은 별로 신경도 안썼는데, 선생님이 배역 지정을 다하시고 몇몇 엑스트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을 찾으시다가 갑자기 “김인철”하시며 제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1,2학년 때 단 한번도 선생님에게 이름이 불린 적이 없었기에, 그렇게 이름이 불린 것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선생님이 내 이름을 출석부 안보고 부르셨다는 사실, 나를 아신다는 것이 너무 행복했습니다. 아주 짧은 대사였지만 그 연극을 통해 저는 말을 더 이상 더듬지도 않게 되었고, 피구부에 들어가 학교대항 대회에도 나가게 되었고, 내 이름을 아시는 선생님을 위해 이 한목숨 다 바쳐 좋은 학생이 되리라 다짐했습니다. 숙제를 빼먹는 일도, 문제를 일으키는 일도 하지 않아, 드디어 우리 집안의 영광인 줄반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2017년도에 금요일마다 큐티반이 운영되었었습니다. 그때 참 열심히 참석하셨던 분 중에 한분이 한영란 권사님이셨습니다. 어느날 큐티 모임이 마칠 즈음에 모였던 분들의 특징을 이름을 부르며 발표하셨었습니다. 각 사람의 특징을 얼마나 맛깔스럽게 표현하시던지, 그리고 맨 마지막에 던진 말은 “그리고 나는 한영란이다” 박수치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학교 선생님 이셨던 권사님은 가르쳤던 학생들도 이름을 부르시며 그렇게 기억하셨을 것입니다. 그랬던 권사님이 치매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당일 일어난 일들을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권사님은 기억하지 못하시지만 권사님이 이름불렀던 학생들이 기억하지 않을까요? 마영희 선생님을 인터넷으로 찾아보았는데 어디에도 자료가 없습니다. 가끔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 중엔 이름없는 우리들을 불러주셨던 분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