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녔던 고등학교가 고려대학교 뒷산에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려대 사범대학에 다니시는 교생선생님들이 많이 오셨고, 고대출신들도 많으셔서 젊은 선생님들 중에는 점심시간에 뒷문을 통해 혹은 소운동장의 갈라진 틈,(우리는 구멍이라고 불렀습니다)으로 고려대에 가셔서 값싼 점심(당시 대학교 점심은 대략 일천원)을 드시고 오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소운동장 구멍은 고려대로 가장 빨리 가는 길이긴 하지만 크지 않아 고개를 완전히 숙이고 무릎을 숙이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구멍입니다. 너무 작아서 몸집이 큰 체구의 사람은 통과하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선생님 중에 수업시간에 농담은커녕 숨소리 내는 것 마저 힘들게 하셨던 국어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늘 정돈된 언어에 절제된 말씀... 아나운서를 해도 되실 목소리에 외모(후엔 선생님 그만두시고 기업인이 되셨습니다)를 가지신 선생님이 있으셨는데, 그분은 남자는 자고로 큰길로 다녀야 한다, 샛길로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은 아무리 바쁘셔도 늘 교문을 통해서 나가셨지, 다른 선생님들처럼 뒷문으로 나가시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날 이 선생님이 너무 급하셨는지, 교문도 뒷문도 아닌, 그 깨어진 틈으로 고개도 숙인채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수업시간이라 다른 학생들이 없는 시간을 선택하셨는데, 하필 제가 그것을 본것입니다.
누가 있나 뒤를 돌아보시는데 얼른 숨어 선생님이 민망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그 틈으로 겨우 나가시려는 모습이 좋았습니다.
‘아 선생님도 급하시면 구멍으로 나가시는 구나....’
물론 선생님은 다시 돌아와 언제 본인이 그랬냐는 듯이 엄숙한 모습으로 다시 돌아오셨습니다.
이번주 따뜻한 글에 실린 내용중 ‘틈’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벽과 벽 사이에 갈라진 곳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나쁜 의미로는 공격하기 좋은 곳, 제일 이해하기 쉬운 말은 ‘구멍’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축구를 할 때 왼쪽 수비수가 구멍이다라는 말은 틈이 있다는 말입니다. 틈이 보이면 만만해 보입니다. 그런데, 꼭 틈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틈이 보이면 왠지 인간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예전엔 틈을 안보이려고 노력했는데, 요즘은 틈을 안보이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겠습니다. 틈을 안보이려고 해도 머리가 안따라가고 몸도 안따라 갑니다. 왜 우리 아버지는 뭘 드시면 입 주변에 티가 나실까 생각했는데, 뭐 먹을 때 자꾸 입주위에 무엇이 묻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이 대부분 틈이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이 만드신 완벽한 인간이라 불리웠던 아담마저도 틈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틈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우리 안에 나도 들어가 있습니다. 남의 틈을 탓하면 안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