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의 한 젊은이가 “하나님 목사가 되겠습니다” 서원하였습니다. 목회자로 헌신하는 이유가 많겠지만, 이 젊은이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그의 삶에 너무 많았기 때문입니다. 박승환 목사님(박준걸 장로님 부친)이 목사가 되신 이유입니다.
6. 25때 인민군에 의해서 죽게 되셨습니다. 총알을 아끼기 위하여 사람들을 바짝 붙여서 앞에 있는 사람에게 총을 쏘면 네명 정도가 한 번에 죽었답니다. 목사님이 맨 앞에 있으셨는데, 갑자기 인민군 리더가 뒤로 돌아가 라고 해서, 뒤로 돌아 맨 끝에 서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땅’ 총을 맞아 죽은줄 알고 오랫동안 누워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앞에 있는 사람까지 총알이 관통된 것이고, 본인은 너무 놀래, 죽은줄 알고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구사일생이라는 말이 이런 것 아닐까요?
그러나 사상적 의심 때문인지, 목사님은 거제도 수용소에 포로로 잡혀 생활하시게 되었답니다. 먹을 것이 없던 그 시절, 하루 식사라고는 고작 주먹밥 한 덩이....
그 한 덩이를 수용소 한 벽에 햇살이 들어오는 한 구석에서 밥 한 덩이를 붙들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답니다. 수용소의 포로들이 벽에 기대어 밥을 먹는 휴식터 같은 곳입니다. 그때 눈을 감고 기도하는 박승환 소년의 주먹밥을 개가 물고 도망친 것입니다. 개도 배가 고팠던 것이지요. 그 밥 한 덩이는 그날 유일한 양식입니다. 박승환 소년이 개를 잡으려고 달려가는 순간, 벽이 무너져 대부분의 사람들이 깔려 죽고 오직 박승환 소년만이 살게 되었습니다.
두 번이나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갚고자 목회자가 되셨습니다. 그런 간증가운데 전도사를 하셨으니 얼마나 신실하셨겠습니까? 목사님을 눈여겨 본 교회 장로님이 목사님을 사위 삼으신 것입니다. 사모님은 꿈 많은 문학도였는데, 많은 사모님들이 그랬듯이 믿음 좋으신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할 수 없이, 교회 전도사이셨던 목사님과 결혼하셨다고 합니다.(못내 이룬 시인의 꿈은 목사의 사모를 은퇴하신 후에 등단하셨습니다)
이민목회 포함 45년간 목회를 하셨습니다.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은퇴하신 후에는 더 많은 교회와 후배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특히 목사님은 글로 후배 목회자들에게는 선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돌아가시기 1년여 전부터 치매 때문에 고생하시는 사모님을 신경 쓰시며 사모님 먼저 보내고 부르심을 받겠다는 기도를 하셨는데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평생을 함께 한 사모님의 남은 삶이 치매로 사시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목사님은 그때 이미 폐암 말기셨는데, 그때부터 목사님은 암과 전혀 상관없이 건강하신 삶을 사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사모님의 몸이 급격이 안 좋아지신 이후에 목사님도 안 좋아지시더니 두 분이 하루간격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삶과 죽음에 모두 하나님이 간섭하시지만, 참 특별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사람과 우리도 그렇게 부르심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참 특별한 은총을 기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