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가 유치원 때부터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한명은 최원규 선교사의 딸 수(부모님처럼 의사가 되었고), 다른 한명은 의사 준비를 하는 체리입니다. 대략 5살 때쯤 어떤 교회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앞은 서리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고 백밀러도 잘 보이지 않아 무심코 침을 뱉고 휴지로 닦았더니, 뒤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이유... 더러워....” 거기에 제 딸도 한몫하며 흉보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다가 계속 아버지 욕을 하면 안된다 생각되었는지 “저렇게 하면 더럽지? 그러나 물이 없을 땐 저렇게 해야지”하고 제 편을 들었습니다. 한참 한국에 글을 올릴 때라 그 내용을 가지고 ‘가재는 게편’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었습니다.
며칠전 집에 가보니 딸이 어린아이처럼 깔깔 거리며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순간 ‘체리’가 왔구나 생각했습니다. 수는 타주에 있고 체리는 플러튼에 살지만 쉽게 만나질 못합니다.
둘다 힘들게 직장생활하며 보내다 보니 어쩌다 만나면 그렇게 할말이 많은가 봅니다. 때때마다 여행도 둘이가고 두녀석다 남자친구가 없어 더 걱정입니다.
얼마전 딸 아이가 “아빠 혹시 나를 위해 기도했어?” 라고 물었습니다. “이녀석아 그걸 말이라고 하니 딸을 위해서 아빠가 기도하지” “그럼 23살까지 남자친구를 안사귀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어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런 기도는 해본적이 없는데?”
“아빠, 그렇게 기도했다고 해야 내가 위로되지, 그렇게 기도 안했는데 왜 나는 아직 한 번도 연애를 못했어?”
그랬습니다. 그 녀석은 23살이 되도록 한번도 연애한 적이 없습니다. 엄격한 아빠 밑에서, 또 목사의 딸로 교회를 섬기면서 언감생심 연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웃으며 한 이야기이지만 딸아이의 나이가 한국나이로는 25살! 집사람이 저하고 결혼한 나이입니다.
툴툴거릴 때마다 “너 빨리 나가 살아”라고 이야기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녀석이 나와 함께 살 날들이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일을 갈 때 차안에서 오랫동안 기도하는 모습, 일을 마치고도 바로 내리는 것이 아닌 차안에서 오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에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지 하며 안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로서 딸 아이를 위해 기도를 해야할텐데, 딸을 못 믿는 것이 아니고 저를 못 믿겠습니다.
혹이나 교제하는 놈이 마음에 안들면 반쯤 죽여놓을지도 몰라....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할지, 아니면 아직 어리니 더 우리와 살게 해주세요 기도해야 할지’... 에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