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주일 말씀을 묵상할 때 주셨던 생각이었습니다. 지금 미국에 와서 사시는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셨던 000 장로님이 계십니다. 너무 선한 성품으로 많은 분들에게 영향을 주셨던 분이신데, 어느 날 섬기던 선교단체에 25년 전 필리핀 선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찾아오신 분이 있었는데 아무리 보아도 선교사 같지 않았습니다. 성경적 지식은커녕 아주 기본적인 소양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갈곳이 없어서 그런지, 늘 선교단체에 와서는 밥을 먹고 가셨는데, 어느날 교수님이 당분간 그분을 집으로 데리고 가셔서 사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장로님이 어느 날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분을 섬기셔야 겠다는 생각이 드신 것입니다. 그냥 좀 도와드리면 되는 일인데, 집에 아이들 시집가고 빈 방이 있으니 기거하게 한 것입니다. 20대 후반에, 그 선교사님이라는 분의 무례함과 함부로 함에 고개를 절래 흔들던 저에겐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였습니다.
일의 결말은 결국, 그 선한 일은 한 달 만에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그 한 달 동안 온 집안이 늘 초비상이 걸렸던 것입니다. 아무 때나 식사하고, 아무 때나 벗어놓고... 씻지 않아서 온 집안에 냄새나고... 결국 그 착하신 권사님이 견디지 못하고 이야기 하셔서 결국 나가시게 되었는데, 내보내는 과정도 그랬습니다. 아마 돈을 주고 내보낸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묵상하면서 그때의 그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았습니다. 절대로 방을 내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도 내 방 나누어줄 자신은 없다. 그렇다면 마굿간은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마굿간 사랑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평소에 쓰지 않는 물건이라도 남 주려고 하면 아까워 하는 속성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굿간 사랑이 교회에서는 흘러갑니다. 마굿간이 아닌 빈방을 내주고 싶을 정도로 열심인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 주 긍휼사역엔 농심 김영준 선생이 도네이션한 라면 300박스가 동네분들에게 흘러갔습니다. 사실 그것은 다른 교우가 도네이션 하려고 한 것인데, 사러가셨더니 김영준 선생이 본인이 하시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요즘 참 라면 구하기 어려운 때에 사랑이 흘러갑니다. 그리고 이은희 집사님이 다시 마스크와 세니타이져가 보내주신 분이 계셔서 나가게 되고... 그리고 멕시코 아이들을 위한 양말이 들어와 이번 주 포장이 됩니다. 그리고 재정들도 채워졌습니다. 고아원에 들어온 재정을 현찰로 보낼 수도 있지만, 몇몇 분이 수고해서 장남감을 구입하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굿간 사랑도 사랑이냐 싶은데, 마굿간이 어디입니까? 요즘 같을때는 그런 사랑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