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동안 한국을 여러번 방문했습니다. 그중에 세 번은 주례때문이었고, 나머지는 초상등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체로 일주일이나 길어야 열흘정도였습니다. 그 기간이면 가족들 챙기기에도 바쁩니다. 공항에서 버스를 타면 부모님이 사시는 장안동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정거장이 있어, 바로 부모님댁으로 갔습니다. 세상이 다 바뀌어도 여전히 1980년대를 연상케 하는 변치않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처가댁방문, 그리고 형제들과 만남을 가지면 한주일이 후딱 지나갑니다. 그러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긴 알았지만 제대로 본적이 없었습니다. 재활을 위해 청담동에 있는 병원을 다닙니다. 장안동과 처가를 벗어나 강남을 자주 가다보니 변화된 한국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고층빌딩은 얼마나 많은지, 너무나 변화되어진 대한민국에 깜짝 놀라기 시작합니다. 미국은 수십년이 지나도 늘 똑같은 거리에 똑같은 건물들인데,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최 첨단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구멍가게는 다 사라지고 말 그대로 사람의 편의를 돕는 편의점들만 있습니다. 커피 전문점들이 한집건너 하나씩 있고, 대중교통시설도 얼마나 편한지, 외국인들도 스마트폰 하나들고 모두 이용합니다. 명동은 이곳이 중국인지 한국인지 모를 정도로 중국사람들로 가득하고, 이젠 히잡을 두른 외국인들도 심심치 않게 보입니다. 끝없이 올라간 고층빌딩숲에서 어딘지 분간을 못하겠습니다.
미국의 촌사람이 대한민국 서울의 거대도시에 들어온 것입니다. 아내랑 근 한달을 같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바뀌어도 간직하고 싶은 그리움, 맛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가 한국가면 꼭 먹어 보고 싶어하던 것이 있었는데, 다름아닌 곱창볶음입니다. 연애할 땐 냄새도 못맡던 아내가 첫아이 예석이를 임신하고 나서 그렇게 먹었던 것은 빨간고추장에 버무린 곱창볶음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에 부모님몰래 밖에 나가 사왔던, 2천원만 주면 먹던 그 곱창볶음을 아내는 그리워하였습니다. 모두가 다 바뀌다 보니 예전에 다녔던 단골집들도 다 사라졌습니다.
한국의 먹거리가 발달하면서 곱창은 어느새 고급 요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1인분에 2만원, 그것도 1인분씩은 팔지도 않습니다. 순수 한우라는 말에 머무는 숙소 근처에 들어가 먹은 곱창은 볶음이 아닌 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맛은 아내가 아이를 임신해서 먹었던 그맛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습니다. 애써 간 곳에서 우리는 그리움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이제 곧 아내는 먼저 미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병간호한다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아내에게 못내 미안했습니다. 아내가 떠나기 사흘전,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은 돼지곱창집, 40년 동안 예전의 전농동 뒷 골목길을 지켰던 그 곱창집은 이제 인터넷에도 소개되는 유명한 곳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나는 24년전 그때로 돌아갔습니다. 행복했습니다. 25일간 병수발 한다고 어디도 가지 못한 아내가 그 식사에 모든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행복해 하고.... 그날 우리는 그리움을 찾았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우리에겐 그리움이 있습니다. 신앙에도 그리움이 있지 않나요? 그때 받았던 은혜의 성경말씀이, 찬양이 흘러나올 때 우리는 어느새 그때의 감격으로 돌아갑니다. 시대가 바뀌고 찬양도 많이 바뀌었지만 한번 오늘은 예전의 그 말씀, 그 찬양을 불러보지 않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