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14일 중국에서 돌아와 그다음 날 미국으로 출국하는 준비 없이 시작된 미국 생활…. 원해서라기보다는 간절해서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새벽을 드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예배…. 새벽예배가 없었던 오렌지 연합교회에 담임이 돼서 시작한 새벽예배도 필요해서 라기보다는 목회초년병이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간절함이었습니다.
7월 2일 날 한국에 도착해서 그다음 날, 새벽 2시에 눈이 뜬 상태로 찾고 찾았던 것은 새벽예배를 드리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수술을 앞두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예배할 곳을 찾았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곳은 병원에 전철을 타고 갈 수 있는 마곡 나루라는 곳이었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하고 조용히 4시쯤 숙소를 나와 찾아간 교회…. 그 교회는 놀랍게도 카드가 있어야 교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에 들어가는데 카드가 있어야 한다니…. 교회는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했는데….
나중에야 이유를 알았습니다. 노숙자들이 들어와 안 나간다는 것입니다. 돈을 주면 나가거나 혹이라도 눈총을 주면 아예 다른 노숙자들을 데려와 횡포를 부린다는 것입니다.
수술하기 전날이 주일이었습니다. 그날 입원해야 하는데, 다른 곳에서 예배드리고 가기가 쉽지 않은데, 다행히 수술한 병원에서 오후 3시에 예배가 있다고 합니다. 수술 전날 드리는 예배이고, 환자들이나 보호자들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병원에서 예배를 두 번 드렸습니다. 예배에 대한 안내가 층마다 붙어 있었고 방송으로 광고도 나왔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는 분은 소망교회에서 오신 여자 목사님…. 헌금 봉투도 소망교회인 것 보니 병원의 높으신 분이 소망교회 교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설픈 예배였습니다. 반주는 노래방 기계처럼 찬송가 제목을 넣으면 기계에서 나오는 것이었고 예배는 시골 예배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배는 그렇게 진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예배를 참석하는 모든 분이 다 간절함을 가지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갓 수술한 분은 링거를 줄줄 다고 서서 예배를 드리셨고, 조금만 아프면 보호자가 환자를 데리고 나가야만 했던 분주함이 있었음에도 예배에 흐름이 깨지지 않은 것은 예배드리는 자의 간절함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과 단절된 이후에 드렸던 간절함의 예배….
시편 51편 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크게 뉘우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다
열흘간의 입원이 끝난 후 퇴원하였습니다. 수술이 잘되어 다리 저린 것은 없지만 절대로 많이 걸으면 안 된다고 의사가 말했습니다. 그래도 두 배로 열심히 해서 빨리 회복되어야지 하며 퇴원했던 날 조금 무리하자 바로 몸이 달라집니다. 눕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의사가 말한 대로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이 수요일입니다. 가장 가까운 교회를 제쳐놓고 인터넷으로 같은 교단 목사님이 담임하는 교회를, 의사가 절대로 200m 이상 걷지 말라고 했는데 대략 500m가 넘는 거리를 정말 땀을 흘리며 찾아갔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싶은 간절함이, 또한 수술하기까지 기가 막히게 역사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지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4부까지 드리는 교회의 수요예배에 오신 분은 고작 70여 명….
저의 간절함과 다르게 목사님은 본문과 상관이 없는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분들에게도 익숙한 것 같습니다. 처지가 달라서 일 것입니다. 늘 예배드리는 분들이 저의 형편과 같은 간절함을 가질 수는 없지요. 그러나 그 수요예배는 혹이나 제가 예배를 인도할 때 저에게 그런 간절함 없이 예배를 인도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했습니다. 예배의 은혜는 우리의 간절함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