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당시로서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던 ‘스쿠프’라는 차를 사서 돌아다녔습니다. 학교에 차를 몰고 다니던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서 돈을 벌어야 되겠다는 생각만 가득할 때,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의 하루는 모두 교회일, 선교단체일, 제가 만든 일들로 정신없었습니다. 청년부 부장, 찬양팀 리더, 중국어 성경반, 중등부 교사, 총무, 선교단체등 정신없이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랬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혹이나 시간이 남아돌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까봐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제말에 오해를 하시면 안되는 것이, 구원받았음이 다시 사라질까 두려웠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받은 그 놀라운 구원을 싸구려로 만들까봐 두려웠습니다. 구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적 삶의 변화가 없다면 과연 그 삶이 구원받은 사람의 삶일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분명히 선물입니다만 그 구원을 지켜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구원받은 삶은 너무나 놀라운 사건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리스도인 우리 스스로 구원을 싸구려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두렵고 떨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구원받았음은 선포하는데, 구원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는 일은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모습은 바로 구원받기 전의 모습과 똑같이 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내가 거지였는데, 나를 불쌍하게 여긴 어느 부자집 어른이 나를 입양하여 아들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옷을 입혀주고 맛있는 것도 늘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좋은옷 안에 늘 거지옷을 입고 지냅니다. 그리고 구걸할 때 썼던 깡통과 수저를 가지고 가끔 좋은 음식을 거기다가 넣고 먹습니다. 분명히 좋은 부모님이 아들로 삼아 주었는데 여전히 거지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녀인데, 여전히 마귀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지난 10월 27일 이른 새벽에 홀로 그랜드캐년에 올라 걸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런 시대가운데 내년에 어떻게 목회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고, 하나님께 내년엔 무슨 표어를 가지고 교회를 끌고 갈까요?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며 갈 때, 해가 뜨기 시작했고, 황홀한 일출가운데, 신학교 입학할 때 붙들었던 빌립보서 2장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말씀이 떠 오르는 순간, 주님께 두렵고 떨며 기도하였습니다.
늘 그렇게 열심히 사셨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이 좀더 치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은 것이고 선물이지만 그 구원받은 사람의 모습을 만드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